[벗님_단편] 천기누설, 1988년 8월 4일
'예언가'하면 흔히 떠올리는 '노스트라다무스'는 암면으로 가득한 거울을 들여다보며 미래를 예언했다고 하지. 앞날을 바라보는데 '눈'이라는 감각 기관은 별다른 효과가 없었던거야. '보이는 것을 믿는다'라는 논리적인 사고를 증명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부차스런 변명에 불과한거지. 아마 너도 들어봤을꺼야, 정수리 중간에 자리한 세 번째 눈. 미래를 보기 위해선 그 능력을 길러야 하는거야. 도사니 법사니 하는 녀석들이 거지마냥 너저분하게 다니는 꼴을 보면 울화가 치밀어오를 때가 있어. 어디 저런 본분도 알지 못하는 녀석들이 선지자를 흉내내느냔 말야. 포장마차였던가, 지저분하게 수염을 기른 녀석이 자신이 도사라고 소개하며 헛기침을 하고는 하는 짓은 영락없는 속물이더군. 어떻게 하면 옆 자리에 앉은 여인네를 꼬실 수 있을까 싶어서, 손금을 읽는다며 심각하게 손바닥을 만지작거리고, 얼굴을 읽어준다며 볼이며 턱을 만지고 인상을 구겼다 폈다를 반복하는거야. 술맛도 떨어지고 해서 아주머니에게 계산을 하고 떠나려는데, 그 녀석이 나를 붙잡더군. 아마 옆자리의 여인에게 무슨 능력이 있어보이고 싶었나보지. 수염을 쓰러내리면서 툭하고 내뱉는 말이 - 자네, 일이 잘 풀리지 않는구먼, 동쪽으로 가지 말아. 피식하고 웃음이 나오는거야.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무슨 일을 말하는걸까. 자신 때문에 술맛이 떨어져버린 걸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미래를 보던 내 능력을 잃어버린 깊은 상실감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불끈 쥐어진 지금 내 주먹을 말하는 것일까? - 너무 심려하지 말게나, 동쪽만 아니면 괜찮을꺼야. 자네 얼굴에 씌여.. 녀석의 얼굴에 내 주먹이 날아들었다. 녀석은 어이쿠 소리를 내며 뒤로 나자빠졌고 옆 자리에 앉은 여인은 사색이 되어버렸다. 뭔가 대단한 결과를 기대하고 있던 모양인데, 진행되는 상황은 기대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던 탓일게다. - 괘.. 괜찮으세요. - 아.. 아이구야.. 자.. 자네.. 지독하리만치 정결하게 몸과 마음을 다듬었건만, 사라지는 능력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빼어물었다. 녀석은 볼을 감싸쥐고 무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안함을 숨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녀석의 팔이 떨린다. - 내가 아니라 니가 잘 풀리지 않는 것 같지? 니가 누운 자리가 동쪽이냐? 동네를 떠도는 강아지 새끼를 걷어차듯 녀석의 옆구리를 찼다. 어이쿠야..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은 몸을 웅크렸다. 자신의 바로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녀석이 도사를 들먹이다니, 나를 붙잡지 않았으면 맞지는 않았겠지. * 포장마차를 빠져나와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고는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선명하게 앞이 보이는 경험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왜.. 왜..' 어지럽다. 몸을 가누기가 어렵다.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마지막에 보았던 그 흐릿한 영상을 떠올리고 있었다. 분명 무슨 메시지가 담겨있었을 것이다. 흐릿한 미래를 선명하게 잡아내지 못하면, 어쩌면 그 능력은 영영 사라져버릴지 모른다. '아른아른거리던.. 그..' 번쩍하는가 싶더니 엄청난 굉음이 귓청을 때렸다. 소스라치게 놀라 몸은 경련을 일으키는 듯 했다. 몽롱하던 의식이 한 순간에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백지, 방금 포장을 뜯은 눈부시게 밝은 백지처럼 그렇게 변해버렸다. 그리고 그 능력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귓구멍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엥.. 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여오기 시작했다. 있는 힘껏 귓구멍을 막았다. 머리가 비었을까, 공명현상인가? 엥.. 하는 소리는 윙.. 하는 소리로 변하는가 싶더니, 다시 엥.. 하는 소리로 변했다. 소리가 고통스러울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무섭도록 커다란 굉음의 연속. * - 음.. 특별히 이상 소견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챠트를 들여다보며 이마를 긁적이더니, 곤궁한 표정을 지었다. 여러가지 테스트를 해봤지만, 손상된 조직도 없었으며, 이상 증상을 일으킬 만한 원인도 쉽사리 발견되지 않았다. 이 병원에서는 더 이상 치료할 꺼리가 발견되지 않는 모양이다. - 선생님은 물리적인 손상이 아니라, 심리적인 손상을 입은게 아닌가 추측됩니다.. 엄청나게 커다란 번개와 천둥이 무의식의 한 자리에 공포스럽게 각인되어 일상에 지장은 주는 심리적인 고통이라는 설명이다. 풀리지 않는 매듭에 단단히 묶여버린 느낌이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조여드는 굵은 매듭에 온 몸이 죄여온다.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그 기분나쁜 소리는 멈추는 법이 없었다. 잠을 이룰 수 없어서 몇 날 며칠을 뜬 눈으로 지새워야했다. 수면제, 수면제, 수면제.. 더 이상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 소리가 들린다. 항상 들리는 그 엥.. 하는 소리에 묻힌 작은 소리들이 들린다. 환청인가? 주변을 돌아봐도 아무도 없다. 칠흑같이 어둠이 깔린 이 새벽에 소리가 들린다. 속삭이는가 하면 킥킥대고 웃는 기분 나쁜 소리들이다. 악.. 고함을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져도 그들의 소리는 멈추질 않는다. 다시 킥킥거리며 웃음을 멈추질 않는다. 잠을 잘 수가 없다. 이대로라면 정말 미쳐버릴지 모른다. 도대체 머릿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난 알아내야한다. * 수면제를 끊었다. 해결해야한다. 알아내야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해야한다. 미치든지 알아내든지 둘 중에 하나다. 사흘이 지나며 난 정신병자처럼 몰골이 변해버렸다. 아니 정신병자였는지 모른다. 나는 그 속삭이는 소리에 최대한 귀를 기울이며 무슨 소리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 말을 중얼거렸다. 킥킥거리며 내는 웃음소리도, 들릴 듯 말 듯 내뱉는 녀석들의 대화도. 그렇게 일주일에 접어들 무렵, 나는 그 녀석들의 대화를 알아듣게 되었다. 이미 엥.. 하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다. 훗날 의료진들이 확인해보니 내 귀의 청각 세포들은 거의 파괴되어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라고 둘러대고 있었지만, 그것이 진실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으나,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 앞으로 이십 여 년이 흘러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그 미래를 나는 볼 수 있었다. 아니 나는 경험하고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엥.. 하는 소리, 킥킥거리며 웃는 소리, 들릴 듯 말 듯 속삭이는 그 대화를 나는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1988년 8월 4일. 나는 방송국을 향했다. 나는 내 조국 대한민국의 수 천 만의 사람들이 마치 미쳐버릴 것 같은 고통을 경험하기 전에 모든 것들을 막아내야만 했다. 사람들에게 알려야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 앞으로 벌어질 일들. 모든 것들을 경고해야만 했다. 천기누설, 나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벌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감히 세상의 뜻을 거스르며 미래를 경고한다니, 못할 짓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야한다. 경고해야만 한다. 지독한 그 고통에서 구해줘야한다. 이 짧은 단편이 담고 있는 내용을 조금 더 알아보고 싶으시면, 아래의 관련 포스트들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 빅브라더 탄생을 즈음하여 #2 ( http://daeil.tistory.com/1141 )
- 빅브라더의 탄생을 즈음하여 ( http://daeil.tistory.com/826 ) - 통신비밀보호법 - 빅브라더로 태어난다 ( http://daeil.tistory.com/320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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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저도 가끔 신문 기사에 나온 사건을 가지고 소설을 써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는데. ㅎㅎ
재미있게 잘 보구 가요. ^_^
오, 이 글에 평을 처음으로 달아주셨네요. 나름 재밌을 꺼라고 썼는데,
아무도 평을 해주시지 않아서.. 아쉬웠던.. ^^;
고운 하루 되세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