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도 전 즈음, 코엑스 무역센터에서 열렸던 어떤 소프트웨어 전시회를 친구와 함께 참관했던 적이 있습니다.

전시회 공간을 가득 채운 부스들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신천지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최근에 출시되었다는 신제품들을 직접 만져보거나, 시연하는 것을 지켜봤었는데, 몸이 하나인게 아쉬웠습니다.
같은 시간대에 동시에 시작하니 어느 하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다음 날 다시 올 수 있는
여건도 아니어서, 보고 싶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 시절은 언덕을 가파르게 올라가는 'IT 부흥기'였습니다.


코너를 돌다가 어떤 시연을 지켜보게 되었는데,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간편함과 더불어 마이크를 들고 있는 제작자에
더 눈길이 쏠렸습니다. 너무 젊은, 아니 너무 어린 나이의 제작자였으며, 사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상협' 사장입니다.
'칵테일'이라는 '멀티미디어 시디제작툴'을 만들었던 20살의 그가 자신의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쉬워졌는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 CD에 배경 음악과 동영상, 글과 사진 등을 자유롭게 조합하고 배치하여
만들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습니다. 그가 시연하는 칵테일의 시연 모습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저렇게 사용하기 쉬운 제작툴을 만들어냈다는 것도 신기하고, 또 대단하게 비춰졌습니다.

삼성과 현대에서 이 프로그램의 시장성을 눈여겨보고 거액에 판매하라고 제안했었지만, 이를 거부하고 직접 시장을
개척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라는 목표를 가지고 벤처 정신으로 프로그램 개발에 매진했습니다.


이 글을 작성하며, 그가 제작했던 '칵테일'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는데, '칵테일98'이 최종적인 버젼으로 확인됩니다.
쉼없이 끊임없는 변화를 거듭하는 IT 시장에서 이 프로그램은 더 높은 이상을 펼치지 못하고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486 PC 시절, 최고의 '멀티미디어 제작 툴'이었던 '칵테일'은 지금 생각해보면 Apple 사의 소프트웨어 같은 느낌이 듭니다.
간편하고 편리한 '놀이'하는 분위기가 드는 그런 이상적인 소프트웨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대로 만든 프로그램 하나에 모든 승부를 건다'라고 할 수 있었던 시절, 진취적인 이상을 가지고 수 많은 IT업체들이
탄생되었습니다. 소프트웨어 업체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치르며 독보적인 자리를 선점했습니다.
성능도 뛰어나고, 국산, 토종이라는 브랜드까지 독차지한 이 IT업체들의 뛰어난 활약상은 정말 가슴을 뿌듯하게 했습니다.


이런 '국산 넘버 원'에 해당하는 제품 중에 바로 '아래아한글 2.1'이 있습니다.
벗님이 처음 사용하게 되었던 8비트 컴퓨터 Apple II에서는 한글이라고 부르기에는 조악한 수준의 글꼴 밖에 없었습니다.
직선, 사선, 동그라미들을 연결하여 한글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기에, 한글은 한글이지만 조형미 같은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냥 알아볼 수 있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한글을 이 요상스런 전자제품(컴퓨터)에서 접할 수 있는게 신기했습니다.

제대로 된 한글을 만나게 된 것은 '아래아 한글'이 처음이었습니다. 진정 '한글'같은 한글을 만날 수 있었고, 몇 개의 글꼴도
제공되어 '한글을 쓴다'라는게 실감이 나게 되었습니다. 외국산 워드프로세서에서 한글을 넣으면, 도드라진 부유물을 접하는
듯한 어색함이 진하게 묻어났지만, 국산 토종 워드프로세서였던 '아래아한글'은 우리의 글 '한글'이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꼭 필요하고 편리한 기능들이 메뉴로 깔끔하게 구성되어있던 아래아한글 2.1은 정말 '최고의 명작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후, 벡터 방식의 글꼴 적용, 한글 맞춤법 적용, 유연한 표 삽입 기능, 간단한 이미지 삽입과 같은 기능들이 추가되며
국내의 워드 프로세서 시장은 언제나 '아래아 한글'이 몫이었습니다. 전 세계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거의 모두 섭렵했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전혀 기를 펴지 못했던 마이크로 소프트에게 '아래아 한글'은 눈에 가시였습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워드 프로세서인 '워드'가 한국에서 점유율을 확보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아래아 한글'과 '워드'는 전혀 경쟁을 펼칠 수 없는 구조에 있었습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워드 프로세서인 '워드'가 한국 시장에서 전혀 점유율을 확보하지 못했던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아래아 한글'과 전혀 경쟁을 할 수 없는 구조에 있었습니다. 우선 '조합형 한글'을 '워드'에서는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MS Windows의 문자표를 기반으로 문자를 표시하는 '워드'에서는 '완성형 한글' 밖에는 사용하지 못하는, 우리가 볼 때
반쪽짜리 워드프로세서였습니다. '아래아 한글'은 조합형 한글 뿐만 아니라, 옛 고어까지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독자적인
문자표를 내장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한글을 사용하는 한국사람이 만들어야 제대로 된 100% 워드프로세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서 양식들을 '워드'로 만드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워드'가 글로벌 스탠다드에는 맞을지 모르지만,
한국의 '현지화'에는 잘 맞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아래아 한글'에서 모두 잘 사용하고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마이크로 소프트는 운영체제인 'MS Windows' 보다 이 기반 위에서 돌아가는 'MS Office'를 주력으로 판매한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MS Office의 한 축인 '워드'를 반드시 한국 시장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끌어올려야 하는 것입니다.
MS는 '아래아 한글'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을 '워드'로 끌어오기 위해 1만원에 '워드 최신 버젼'을 판매하기도 합니다.
수익이 발생하던 시장을 파괴하며 상대 업체가 쓰러지고 넘어질 때까지 '자본'으로 밀어붙이는 전쟁을 시작한 겁니다.


유니코드가 적용된 새로운 MS Windows가 발표되자, '통합완성형(확장완성형)'의 적용으로 지금까지 사용하지 못했던
'똠방각하', '펩시'와 같은 한글도 쓸 수 있다고 홍보에 열을 올립니다. '조합형'을 지원하는 '아래아 한글'에서는 예전부터
쓸 수 있는 글자들이었는데, '워드'는 그 중 일부를 추가적으로 사용할 수 있음에 대해 홍보를 하는 것입니다.

이후에는 경영 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던 '아래아 한글'을 만드는 '한글과 컴퓨터'을 거액에 인수하겠다는 제안도 합니다.
'아래아 한글'을 만드는 국민 기업을 넘겨줄 수 없다는 국민들의 반발이 시작되고, 결국 이 제안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아래아 한글 815'가 이 당시에 판매된 것으로 기억됩니다. 벗님도 작은 도움의 일환으로 이 프로그램을 구매했었습니다.

'워드'는 막강한 MS Office의 '엑셀'과 '파워포인트'와 함께 최적의 궁합을 선보이며 점차 시장을 섭렵하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엔가 '한글과 컴퓨터'와 '마이크로 소프트'의 '양사 기술 협약' 같은게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주요한 내용이
MS Office의 호환성를 가져오고, 아래아 한글의 맞춤법 기법과 몇몇 기술들을 이전하는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Flickr by spotlights


'아래아 한글'의 수 많은 단축키에 익숙해있던 벗님도 이 시기 즈음부터 점차적으로 사용 패턴이 조금씩 변화하게 됩니다.
마이크로 소프트 사의 제품들은 모두 공통적인 사용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데(아이콘, 단축키 등등), 이런 환경에 점점
익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단지와 같은 간단한 문서는 '파워포인트'로 만드는 것이 편하고, 간단한 수치계산은 '엑셀'로
하는게 편리했습니다. 이 둘에 익숙해질 즈음부터, 아래아 한글을 하려고 하면, 단축키부터 서로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그토록 능수능란하게 다뤘던 '아래아 한글'이었는데, 사용 빈도가 줄어들다보니, 어색함으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워드'와 '아래아 한글'의 간극은 점점 많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 '한글'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아래아 한글'의 침체는
개인적으로도 많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 MS Office 2010이 출시되어 조금 사용해보고는 바로 호감이 생겼습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Apple 프로그램의 장점들을 알게 모르게 차용해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는데, 사용자의 사용패턴을
잘 파악한 편리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MS Office의 이 만큼 앞으로 성큼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래아 한글'의 차기작 '한글과 컴퓨터 오피스 2010'이 드디어 선을 보인다고 합니다.
현재 '클로즈 베타 테스터' 이벤트를 시작했습니다. '한컴 오피스'에 관심어린 의견을 주실 100분을 모신다고 합니다.
바로 '베타 테스터'를 신청하고, 이렇게 길지만 짧은 글을 올립니다.


아래아 한글 화이팅, 한글과 컴퓨터 화이팅입니다.
우리 '한글'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아래아 한글'의 멋진 도약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관련 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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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사가아빠 2009.09.26 11: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기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글이네요.
    그중 단연 최고는 한글815였던것 같습니다. 저도 구매을 했는지 안했는지 기억조차 없었는데 아마 했을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한때 컴퓨터가 없으면(아래한글이 없으면) 글이 안써진다고 했었는데 이젠 정말 먼 기억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얼마전 "한글, 모바일에서 길을 잃다" 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워드는 스마트폰에서 읽기가 지원되는데 한글은 아직이라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새 버전에서는 모쪼록 옛날의 영광을 누렸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관련기사: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77808.html

    • BlogIcon 벗님 2009.09.28 1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 역시 아래아한글이 다시금 옛 명성을 다시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완성도 높은 2010을 만나게 될지 기대해봅니다. ^^

      고운 하루 되세요. ^_^

  2. BlogIcon Mickey 2009.09.26 16: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년전쯤이면 저도 행사장 한컴 부스에 있었겠군요..
    그땐 매년 전시회 및 로드쇼 다 따라다니던 시기였거든요 ^^;
    추억이 새록새록 떠 오릅니다.

    • BlogIcon 벗님 2009.09.28 1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같은 느낌을 공유하셨을 것 같습니다. ^^
      아 그 즐거움이란.. 다시 그런 즐거움을 간직할 수 있을까요..

      고운 하루 되세요. ^_^

  3. BlogIcon CIDD 2009.09.27 18: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맥용도 나왔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는 국산이 유난히 보호받는데, 묘하게 프로그램은 그렇지 못하네요.
    hwp가 범용적으로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 BlogIcon 벗님 2009.09.28 1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xml 포맷이 제대로 지원만 된다고해도 아래아한글의 시장이 넓어질 것 같습니다.
      독자 포맷의 시장은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지요.
      맥용 아래아한글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

      고운 하루 되세요. ^_^

  4. BlogIcon 한과장 2009.09.29 1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댓컴의 한과장입니다. 트랙백 주신 분들 성지순례 다니고 있습니다. 그 시기에 칵테일의 부스였다면, 아마 저도 벗님과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CIDD님, 맥용 한/글에 대한 요청이 꽤 있는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맥의 시장점유율이 이래서야... ㅠ ㅠ 윈도우즈와 맥은 운영체제의 개념 자체가 꽤 달라서 단순 포팅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피해가는 길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바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씽크프리 오피스도 참고할만한 아이템이죠.

    • BlogIcon 벗님 2009.10.01 08: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깨스치는 인연 즈음은 있었을 것 같습니다.. ㅎㅎ

      사용빈도에 따른 가부 결정, 참 어려운 부분이긴 합니다.. ^^;

      고운 하루 되세요. ^_^

  5. 현수아비 2009.10.03 02: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맥용 한/글 2006 이라는 제품이 있습니다. 아마 따로 판매하지 않고 맥과 함께 판매되었을 겁니다. 지금도 판매하는지도 모르겠네요.

  6. BlogIcon 현수아빔 2017.01.04 1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맥용 한/글 2007 이라는 제품이 있습니다. 아마 따로 판매하지 않고 맥과 함께 판매되었을 겁니다. 지금도 판매하는지도 모르겠네요.

    • BlogIcon 벗님 2017.01.09 15: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맥용 한/글 2014까지 출시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지속적으로 지원되는 것은 좋긴 하지만, 너무 윈도우에 종속적인 형태로 컨버젼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긴 합니다.

      고운 하루 되세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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