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님_단편] 어떤 공무원의 질문


여러분,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고 계시지요.
다름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꼭 숙지하고 있어야 할 사실이 하나 있어서 이렇게 알려드립니다.
바로 준법정식이 투철한 우리 정부에서 살아가기 위한 방향을 알려드리는 것이니
꼭 참고하시고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지키지 않으면 여러가지 불이익들 로 아마 그리 편안하지않은 삶이 되겠지만.

여러분들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공손하게 정부에서 추진하는 것들을 받아들여야지 '사리에 맞지 않는다거나, 말도 되지 않는다, 혹은 몰인정하다'와 같은
추임새를 넣으면 안됩니다. 정책을 추진하는 우리들도 이미 잘못 되도, 한 참 잘못된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에게도 식솔들이 딸려있다보니 '보스'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충분히 이해해주시겠지요.

종종 현 사회의 실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역사적 대오라며 비판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거나,
혹은 밀려서 떨어져버리는 이들이 종종 있는데, 어디 그 마음을 우리가 모를까요.
심정적으로 우리도 매한가지겠지만, 저만 바라보고 있는 우리 식솔들을 생각하면, 연로하신 노모를 생각하면.

냉정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몰일정하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냉정하고, 몰인정한 사람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저를 만나게 되시면 얼마나 포근하고 부드럽고 상냥한 태도에 깜짝 놀라게 되실 겁니다.
그거 바로 저의 본모습이며 그렇게 살아가는게 제가 바라던 삶의 모습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아, 이야기를 다시 돌아갑시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를 이해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만,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거나,
전혀 모르겠다는 태도를 취해야합니다. 연기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선인들은 도덕적인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과연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하루에도 몇 번이나 가면을 뒤집어써야 하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데,
겉과 속이 같은 그런 인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 중에 이런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와 부인, 형제와 자식 등
소중한 가족들이 모두  물에 빠진 상태에서 누구를 구할 것인가 하는 참 비정한 질문입니다.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나마 제가 받고 있는 질문은 이보다는 조금 수월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상황은 비슷하지만, 그 대상이 다릅니다. 나의 가족을 구할 것인지,
아니면 당신을 구할 것인지만 결정하면 됩니다.
당신이 생각하더라도 제가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저와 같은 입장에 놓이더라도 동일한 결정을 내리지 않겠습니까.

저의 심정을 이해해주시겠지요. 눈을 한 번 질끈감고 불의하지만 더러운 일을 저질러야하는 저를 이해해주시겠지요.
아무리 씻어도 씻기지 않는 이 슬픔을 이해해주시겠지요.

그냥 결정문만 읽었어야 했는데, 오늘도 그러지 못했군요. 자, 이제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은 불법을 저지른 범죄인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정부를 비판하셨습니다.

아, 아직 비판하지 않으셨습니까?
상관없습니다. 비판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미 그에 대해서는 수사가 들어간 상태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입증하는 수사 결과들이 발표될 것입니다.
당신이 얼마나 치밀하게 정부를 비판하려했었는지 많은 국민들이 알게될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물에 빠져저 허우적거리는 당신을 구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가족이 소중하고, 우리 나라가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눈을 한 번 질끈 감고 제 자신을 다독입니다.

당신은 죄인입니다.
당신은 죄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죄인이 아니고,
우리 가족이 죄인이 아니며,
우리 '보스'가 죄인이 아니니,
바로 당신이 죄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자,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해보세요.
별로 듣고 싶은 마음도 없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제 귀를 막아버리겠지만,
그래도 들어야만 한다는 절차가 있다고 하니, 이렇게 잠시 시간을 드립니다.

자, 당신은 왜 죄인이 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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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택현 2010.02.27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두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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