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님_단편] 블랙.. #3

아래의 글은 '벗님의 꿈'이라는 매개처를 통해 이렇게 전해지며 알려지게 되었지만, 글의 원작은 '룩 첵 콕 피트'의 '블랙'입니다.
이 '룩 첵 콕 피트'라는 원작자가 실존하는 혹은 실존했던 인물인지, 혹은 가상의 인물인지는 현재 확인되고 있지 않습니다.
보통 '꿈'이라는 매개처를 통해 등장하는 인물 중, 얼굴이 낯선 이의 '이름'이 꿈에서 깨어난 이후에도 명확하게 떠오르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은데, 이 '룩 첵 콕 피트'는 이 글의 원작자였기에 그러했는지 모르지만, 오랜 동안 기억에 남아 이렇게 알려드립니다.

3. 타임머신

폭풍가 거세다. 앞을 분간하기도 어려울만큼 퍼부어대는 비바람과 높은 파고는 곧이라도 배를 뒤집어버릴 듯한 기세다.
튼튼한 기함인데도 이리저리 파도에 따라 휘청거린다.

나는 공중으로 떠올라 기함으로 오른쪽으로 다가갔다. 육신과 함꼐 접근하는 것이었다면 기함에 안착하는 것은 고사하고,
뱃전에 부딪치거나, 물에 흠뻑 젖어 깊은 바다속으로 곤부박질쳤을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는 헬기로 접근할 수도 없다.
물론, 현 시점에 하늘을 나는 신무기 같은 건 개발되지 않았다. 사실 나라는 존재도 여기, 이 시간에 존재할 수 없다.


어느 공간에나 존재하는 에테르에 변화의 기록들이 잔재되어있음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자, 과학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당시에는 무한히 확산되는 에테르에 그 변화의 기록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쉽게 납득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부에는 이미 엄청난 프로젝트의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몇 해가 지나고, 에테르를 재구성할 수 있는 기술이 확보되자, 타임머신의 구현가능성에 대해 심도있고 검토되었다.
지금에 비하며 무척 초보적인 기술이지만, 처음 실험은 이 에테르의 정확한 재구성이 어느 정도 가능한지 확인하는 단계였다.
수 백 분의 일 초 전 정도의 과거로의 회귀를 시험적으로 성공한 후, 이 프로젝트는 극비리에 수 많은 과학자들이 참여했다.

과학의 발전은 언제나 신무기에 그 첫 번째 효용성을 갖는다. 그리고 이 무기를 직접 운용하는 이는 목숨을 담보해야했다.
타임머신을 이용한다는 것은, 그 대상자의 분자적 분해를 가정하고 진행되었다. 머신에 태울 수 있는건 훗날의 일들이다.

나는 이 역사적 실험에 최초로 참여하였다. 인공적인 분자적 분해는 어쩌면 죽음과는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분자적 분해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어떻게 인지력이 유지될 수 있는지, 이 부분이 가장 궁금하고 의심스러웠다.
의미있는 실험이지만, 의미없는 죽음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은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기억과 사고, 느낌과 감정들이 과연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분자적 분해가 이루어지며 더욱 또렷해지는 건 나라는 존재의
강렬한 의식이었다. 사물과 공간이 뒤엉키고 명암이 흐릿해지고 있었지만, 유일하게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점점 확고해졌다.
나는 그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나였다. 이미 얼굴이나 표정을 볼 수는 없었겠지만, 내 얼굴엔 미소가 지어졌다.

의식이 움직이는데로, 감성이 이끄는데로 과거로의 회귀를 시작했다. 눈 한 번 깜빡이는 것과 같았다.
사물과 공간이 흩어지고, 뭉치고, 다시 흩어지고, 다시 뭉치고. 사물이 공간이고, 공간이 사물이었다.

어느 틈에 높은 파고에 흔들리고 있는 기함에 다가갔다. 기함의 중심부로 다가가 선실을 들여다보았다.
무슨 실험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두꺼운 철근에 일정한 진동을 주고 있었다. 이 실험은 지속적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모르스 부호기.

순간, 이 프로젝트의 실험이 성공했음을 확인했다. 이 사실을 알리자. 다시 나에게로 돌아가자.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지금의 나에게. 이 평온한 내 자신에게. 나는 이미 나를, 나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다음 글에서는 아래의 내용들이 이어집니다.

1. 여행

2. 사거리

3. 타임머신

4.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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