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님_단편] 잃어버린, 잊어버린

상상력을, 상상력을 잃어버렸다. 무엇이든 마음 먹는데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는데,
자유롭게 펼치던 그 날개를 잃어버렸다. 등 뒤 날갯죽지에는 아직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팔을 뻗어 한 달음에 다다를 수 있었던 그 곳을 이제는 더 이상
다가갈 수가 없다. 하염없이 팔을 휘저어봐도, 눈을 질끈 감고 온 신경을 날개를 퍼덕이려
애를 써봐도 한 발짝도 난 날아오르지 못한다. 무거운 몸뚱아리, 초라함이 나를 엄습한다.
그 우와하고 찬란했던 날개는 내게 선물이었을까, 아니면 나를 서서히 죽이는 독이었을까.

Flickr by 44966855@N08


피터팬은 어른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는 소년이어야 한다. 설령 알콜이 가득 담긴 병 안에
박제의 모습이 될지라도 그는 소년으로 남아야 한다. 우리 기억속의 영원히 어린 소년으로.
영원한 청춘의 제임스 딘, 영원한 소년의 피터팬. 그는 절대 어른이 되어서는 안된다.
때묻지 않는 소년, 시기하고 질투하고 거짓과 탐욕이 가득한 그런 어른이 되어서는 안된다.

욕심일까. 깨어진 유리, 주르륵 손등을 타고 차가운 액체가 흘러내린다. 생명수, 붉은 피.
무엇 하나 주어담을 수 없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 지나버린 세월, 놓쳐버린 기회.

Flickr by duckducksnap


치열하게, 지독하게 그렇게 삶을 살아야한다던데,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자만하고, 나태하고, 독선적으로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것이 마치 정답인냥, 나를 위해, 나만을 위해, 나를 중심으로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타인, 남, 내 몸뚱아리가 아닌, 내 마음과 조금이라도 맞지않는 그들을 끝없이 배제하며.

내 안의 쌓아놓은 담, 그 안으로 더 많은, 더 많은 벽돌들을 쌓고, 또 쌓지 않았던가.
이제는 더 이상 어깨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비좁아져버렸지만, 그 안에서 만끽하는 아늑함,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그 안락함에 빠져드는 것이 아닐까. 잊혀지지 않은 그 편안함.

이제 돋아나지 않는 날개, 빛을 잃어버린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 상상력, 그런 것도 괜찮다.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나, 하염없는 욕심 같은 것도 더 이상 내게는 의미가 없다.
다시 되돌아가지 않아도, 다시 되돌리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이제 행복하다. 평온하다.

회귀, 마지막 힘을 쏟아내며 물길을 타고 오르는 그 물고기들의 머나먼 여정.
죽음이 다가오면 찾아간다는 코끼리들의 무덤. 내게도 그런 회귀 본능이 있었던 모양이다.
까맣게 잊어버렸던 기억 언저리의 그 모습 그대로, 공처럼 웅크리고, 엄지 손가락을 물며
나는 아기로 돌아간다. 눈을 감고 쌔근쌔근 숨을 내쉬는, 나는 아기로 돌아간다.

늘어진 거죽, 희끗희끗한 백발, 노쇄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나는 아기로 돌아간다.
태초의 나의 고향으로, 그리운 나의 요람으로.
어머니의 자장가가 들리는, 어머니의 토닥임이 느껴지는.
나는 아기로 돌아간다.

Flickr by sign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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