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늪


깊은 늪.

허우적거리는 육신은 물먹은 솜이 되었다.


어깨

희망

모든 것들을 잠식한다.


포기하면 편하다.

편안해진다.


정말 편안해질까. 

정말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고통을 쾌락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미친 세상

빌어먹을 세상


흔들리는 희망의 불씨들은 살아남을 수 없었다.

한 줄기의 빛을 잃고 어둠과 하나가 되어갔다.


잔인하게 내 머리 한 뭉치를 떼어가 버렸다.

그 안에 담긴 즐거움, 행복, 희망들을 잃어버렸다.


기억상실

희망상실

존재상실



#2. 변호인


망각.

포기하면 편하다.

편안해진다.


세상은 바라보는 것만큼 보인다.

여기를 바라보면 여기가 보이고

저기를 바라보면 저기가 보인다.


보고 싶지 않아 눈을 돌리면

보지 않아도 된다.


포기하면 편하다.

편안해진다.


깊은 늪 속에 빠져 이제 가녀린 손가락 하나만으로

그의 존재를 희미하게 증명하고 있는 그를 향해

자신의 발목이 잠기는 것도 잊은 채 힘주어 그를 꺼낸다.


자신도 조금씩 늪으로 빠져들고 있지만

그의 손을 놓을 수 없다.


어느 날

그는 내 아들이 될 수도 있고

그는 내가 될 수도 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깊은 늪 속으로 보낼 수는 없다.


#3. 노무현


바보 노무현.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부른다.


바보.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바보.


올바르지 않은 게 우리 세상

정의롭지 않은 게 우리 세상

양심적이지 않는 게 우리 세상


이런 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라는 걸

인정할 수 없다고 허용할 수 없다라고 말했던

그는 진정 바보였고, 그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4. 세상


그는 허망하게 떠나고 내 머리 한 뭉치가 사라졌다.

그 안에 담긴 즐거움, 행복, 희망들을 잃어버렸다.


올바르지 않음에 대해 동조하거나 묵인하지 않은 채

정상인처럼 내 자신을 속이며 난 살아갈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진다. 아픔이 너무 크다.


아직 세상은

우둔한 바보

우직한 바보

‘옳지 않은 건 옳지 않다.’라고 말하는

우리 시대의 바보들이 필요하다.




길게 한숨을 몇 번이나 쉬고

아무 말도 못 하고 극장을 무겁게 나서며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무심한 듯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아래의 글을 접하고는 더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렀다.




어찌 가슴에 묻어둘 수 있을까.

어찌 잊어버릴 수 있을까.


바보,

그 사나이가

우리와 함께 살아갔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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