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프로그램, 흥미롭긴 하지만 벗님은 이런 프로그램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처럼 '함께 나아간다'라는 협동이 아니라 

'밟고 일어선다'라는 경쟁 구도가 뚜렷하게 프로그램 내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매주 한 명 이상의 탈락자를 발생시키며 더욱 치열한 경쟁 구도 하에서 참가자들이

이 험난한 시련을 어떻게 해쳐나갈 것인가를 지켜보는 과정인데

이러한 방식은 현대화된 검투사의 승부를 지켜보는 것과 별반 다른 바가 없습니다.



합격했지만 합격했음을 마음 놓고 즐거워할 수 없는 합격자의 희미한 표정 변화와

탈락으로 안타까움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슬픈 표정의 탈락자를 번갈아 비춰줍니다.


수 많은 관중들은 이 치열한 검투장에서 승자와 패자를 향해 환호성을 지를 뿐

정작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 자신들의 삶의 좌지우지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선 누구 하나 시선을 돌릴 겨를조차 없습니다.


이런 현대화된 검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또 다른 경기장에서 열리고 있는 

드라마에 눈을 빼앗기고, 또 다른 경기장에서 열리고 있는 영화, 스포츠에 

이미 관심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에 뭐 사실 그렇게 오디션 프로그램이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 물어보지 않고, 대학교에서는 교수님에게 물어보지 않는

우리의 아이들, 기자회견에서 아무런 질문도 던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기자들은

어쩌면 이런 '협동'이 아니라 '경쟁'이라는 환경이 빚어낸 문제의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대로 된 정치는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어 갑니다.


스웨덴은 현재의 사회를 만들어내는데 30여년이 넘게 걸렸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은 스웨덴과 같은 협동이 사회의 의식이 되는데 얼마나 걸리게 될까요.


*


얼마 전에 경기장이 또 하나 생겼습니다.

현판에는 '아트 스타 코리아'라고 걸려있고, 이 경기장에서는 노래, 요리, 작곡과 

같은 일반적인 것으로 겨루는게 아니라 예술을 가지고 경쟁을 한다고 합니다.

'노래'도 예술처럼 하는 사람이 있고, '요리'도 예술처럼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제는 아예 '예술'을 예술처럼 하는 사람들이 경쟁을 한다는 겁니다.



누가 더 '예술'적인지를 심사하며 한 명 이상씩 예술가를 탈락시킨다고 합니다.

예술에 대해 거의 문외한인 벗님도 이 오디션 프로그램은 참 궁금했습니다.

예술을 도대체 어떻게 심사를 한다는 것인지 참 아리송하기만 했습니다.


여러 예술 작품을 두고 과연 어떤 기준으로 점수를 주게 되는 것일까요.

노래와 같은 경우에는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들도 노래를 들어보면 어느 정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만큼 선명하게 심사의 기준이 잡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은 어떤 기준으로 그 심사가 공정하다고 답할 수 있을까요.

심사자 주관적인 평가가 주요하게 될 것 같고, 그 평가를 일반인들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게 쉽지 않을 것 같다라고 생각됩니다.

어떤 분이 이야기한 것처럼 비틀즈도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처음 시작했었다면

아마 탈락했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는 결코 그저 우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예술을 심사할 것인가.


1회 내용을 들여다보니 예술 심사의 주요한 판단 기준 중 하나는 작가의 설명입니다.

작품을 그저 감상하고 점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게 직접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 설명으로 작품이 완성되며 이것을 기준으로 점수를 부여하고 있었습니다.


언변이 능하지 않은 작가의 작품은 그 만큼 점수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고

또 제대로 된 평가도 얻어내기 전에 탈락하게 될 것 입니다.



미안하지만 이 예술 작품도 이 오디션으로 첫 선을 보였었다면 탈락일 것입니다.

예술가가 '왜 내가 내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는가, 당신이 알아서 판단하라'라고

설명 대신 짧게 언급을 했다면 '예술을 접하는 이들에게 당신의 작품은 불친절하다'며

바로 탈락을 선언해버릴 겁니다. 이것이 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일반적인 방식입니다.



이 작품은 어떨까요?

작품 설명을 접하기 전에 먼저 점수를 마음 속으로 주시고, 

아래의 작품 설명 페이지를 통해 간략한 설명을 보시고 다시 점수를 줘보세요.


작품 설명 :


'작품의 가치'는 '작품의 설명'으로 다시 정의되기도 합니다.

품위 있고 친절하고 깊이 있는 설명이 추가된 작품에는 당연히 더 많은 점수를 부여하게

되는 게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벗님도 당연히 설명 있는 작품에 더 점수를 주게 됩니다.


그런데 '아트 스타 코리아'의 작품 설명과 위에 있는 작품 설명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작품을 만든 이'가 설명을 하는가, '작품을 보는 이'가 설명을 하는가 입니다.


물론 '작품을 만든 이가 설명을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작품에 대한 설명일 것입니다.

하지만 '작품을 읽는 방법으로 이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라고 되묻게 됩니다.

예술 작품들은 수학이 아닙니다. '1+1=2' 라는 한 가지 풀이만 존재하는게 아닙니다.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한 사람이지만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수 많은 사람들이고

그 작품에 대해 평가하는 것도 역시 수 많은 사람들의 눈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술 전문가 집단, 평단의 집단, 그들을 대표해 점수를 주고 있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

 당신의 작품은 별로입니다. 부족한 것이 많으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예술을 저렇게 평가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요?


'아트 스타 코리아'가 좀 더 가치 있는 방식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작가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을 들을 것이 아니라, 심사의원이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어야

할 것입니다. 심사의원들은 그들의 공간에서 각자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하고 토론을

진행하며 점수를 부여하고 최종 결론에 도달한 후에, 각각 작품의 작가들에게 그들의

작품에 대해 심사를 하며 갖게 되었던 의문들과 추측들에 대해 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작가를 대하는 것이 올바른 방식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래의 작품에는 어떤 점수를 주시겠습니다. 작가의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을 겁니다.



어떠신가요? 이 작품에 대해 어떤 점수를 주실 건가요? 설명이 없는 이 작품의 점수는?



설명 대신 작가의 이름과 작품의 이름을 함께 보여드립니다.

작품의 점수가 달라졌나요? 아니면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나요?


선입견 없이 작품을 바라보고 심사를 한다는 게 과연 말처럼 쉽게 될 수 있을까요?


브라인드 테스트처럼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유명한 작가들이 현재 참가자의

이름으로 대신 작품을 출품하고 심사를 받게 된다면 과연 그는 어떤 점수를 받을까요.

물론 참가자가 자신이 작품을 보고 느낀대로 설명을 하면서 진행한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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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muy.kr 2014.04.08 02: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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