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님은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글을 짓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얀 여백의 종이에 잘 깎인 연필로 촘촘하게 채워나가는 방식이 아닌 

리드미컬하게 키보드를 누르며 쓰고 고치는 것을 선호하다보니
쓴다라는 방식가 아니라, 짓는다라는 표현이 더 옳바른 것 같습니다.

나의 마음 속의 생각과 감성들을 고스란히 담아 내보일 수 있는
이 '글을 짓는 행위'는 스스로의 삶의 위안으며 응원이고 격려입니다.

벗님은 글이 가지고 있는 그 무한한 힘을 알고 있습니다.
누구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강인한 체력을 소유한 장사라 할지라도
세월이 흐르면 노쇠하고 초라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이치입니다.

시간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 각자가 영위하고자 하는 

다양한 가능성을 선물해주지만,
그 시간이 흐르고 나면 하나 하나 다시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물리적인, 물질적인 것들이 이렇게 하나 둘 소멸하는 것을 지켜보며
과연 우리들은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주어야
하는 것일까 하는 고민을 해보게 됩니다.

결국은 정신적인 유산이 가장 소중하고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요.

올바른 정서.
생명의 존귀함.
사랑의 위대함.

이 정신적인 유산을 전달하는 방식으로는
대화, 그림, 혹은 음악이나 조각도 좋습니다.

벗님은 화술이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니고,
그림도 썩 잘 그리는 편도 아니고,
악보를 보며 음악을 떠올리지 못하고,
손으로 주물럭거리며 무언가를 잘 만들지도 못하니
결국은 글이라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문득 벗님이 요즘을 글을 잘 쓰지 않습니다.
바쁜건가? 글을 쓰지 못할 정도로 바쁜 것은 아닙니다.
그럼 뭔가 재밌는 것에 빠져버린 것인가?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세상은 하수상하고,
좀처럼 마음 편하게 희희낙락하며 글을 쓰지 못하는
심정적으로 안정을 잘 찾지 못한 것을 그 원인으로 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참 명분도 좋고 핑계도 좋습니다.

벗님이 글로 먹고 사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지 않기에
이렇게 멋진 명분을 달고, 절필이네 뭐내 하며 화살을 밖으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왜 글을 쓰지 않는가를 곱씹으며 들여다보면
어떤 문제이든 그 발원으로 찾아가보면
결국 그 개인, 그 당사자의 결심과 결정이
그 사람의 삶와 그 주변인들의 삶을 좌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스스로가 택한 방식과 방법으로
자신을 가두거나 혹은 한계를 무너뜨리고 나아갑니다.
그 결정은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판단에서 시작됩니다. 

벗님은 왜 글을 쓰지 않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이제 찾은 것 같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살펴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밖으로 향한 시선이 아닌 스스로를 향한 시선으로, 
그저 자신을 바라보시면 됩니다.

살펴보고, 수긍하고, 이해하고,
그리고 이제 행동하시면 됩니다.

언제부터?
바로 지금부터.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벗님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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