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드. 이 답답한 영화를 커다란 스크린이 아니라 작은 화면에서 볼 수 있었다는 점은 개인적으로는 참 다행이었다. 이 영화 베리드의 몰입감은 정말 최고였다. 누워서 보고 있다가 몸을 일으켜 앉아서, 또 꿈틀꿈틀 몸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일어나기는커녕 무릎을 굽힐 수도 없고, 언제 밀폐된 공간의 산소가 모두 줄어들어버릴지 모른다는 그 암담함과 답답함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신체의 자유를 빼앗아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줄 수 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할 수 있었다. 불과 몇 분 만에 숨 쉬는 것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범죄자에게 가하는 하나의 형벌로서, 겨우 몸이 구겨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에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 아무 자극도 주지 않고 그렇게 가둬놓는다고 하는데, 정말 끔찍할 형벌이 아닐까. 영화 베르디는 권하고 싶지 않을 만큼 잘 만들었다.

우리나라 영화 중에서 이렇게 장시간을 폐쇄된 재난 현장에 갇혀 있는 한 인물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더더군다나 터널처럼 큰 영화에서. 


연극이라면 충분히 연출될 수도 있는 소재이지만, 영화에서는 시도하기 쉽지 않은 설정이다. 자칫 흥행이 되지 않으면, 투자금 회수는 이미 물 건너가고, 의도치 않게 감독의 마지막 작품으로 되어버릴 수도 있다.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지독하고 지독한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제작되고 개봉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이 흥행이라는 중요한 키를 절대 내려놓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거대 자본이 투자되는 영화 산업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 제작사, 관객들과도 일정 부분은 타협을 보며 영화를 제작해야 한다. 관객들이 실망하지 않을 만큼,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게 흥행을 시켜야 다음 영화, 또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작가주의 영화? 이런 건 정말 쉽지 않다. 관객들의 평은 언제 어떻게 180도로 바뀔지 알 수 없다.

터널, 어떻게 이 영화를 제작사의 제작 승인을 받고 만들 수 있었으며, 또 극장에 걸 수 있었을까.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봉준호 감독,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 칸 영화제라는 흥행 요소가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 같았고, 흥행도 영화에 대한 평도 상당히 좋았다.

영화 터널에서는 '괴물'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큰 흥행 포인트는 없었다. 터널은 '하정우, 무너진 터널. '끝까지 간다'의 김성훈 감독', 이 정도가 전부가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이 3가지 외에 '세월호'라는 무거운 주제가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작을 아직 읽진 못했지만, 터널의 원작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이전에 쓰였다고 한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세월호 참사 이후에 이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해도 크게 어색할 것 같지는 않다.


사람이 우선이 아니라, 자본이 우선이 사회.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안전 불감증.
나만 아니면 상관없다고 여기는 개인주의.
무능한 국가, 전시 행정.
국익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저질러지는 국가 폭력.

하정우에게서 세월호 잠수사와 많은 아이를 구했던 트럭 운전사를 본다.
배두나에게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본다.
오달수에게서 이종인 대표와 세월호 참사를 안타까워하는 국민을 본다.
남지현에게서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하게 되어버린 아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잊혀버린 나를 본다.

어디에서,
이 터널이라는 재난을, 세월호라는 있을 수 없는 참사를
나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거리를 걷다 보면 가끔 굳게 다문 입으로 노란 피켓을 들고
세월호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어린 학생들을 보게 된다.
그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마음이 먹먹하다.

어른들이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니,
어른들이 바로잡아야 할 일들을 못 하니,
아이들이 나서서 굳어버린 어른들의 알량함을 깨뜨린다.

영화 터널의 포스트에서는 아래와 같은 문구가 쓰여있다.

난 아직 살아있는데... 

지금 저 안에 있는 사람, 아직 살아있다구요!


이제 지겨우니 그만하라고,
이제 할 만큼 했으니 덮어두라고.

무엇을 말인가.
무너져버린 국가를,
무너져버린 터널을,
무너져버린 시민을,
무너져버린 당신을

지겨우니 그만하라고,
할 만큼 했으니 덮어두라는 말인가.

원작 소설 터널의 결말은 영화와 다릅니다.
영화를 보시고 난 후, 원작 터널의 결말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대한민국의 현실은
원작에 가까운지
영화에 가까운지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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