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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님_단편] 날개..

하늘은 푸르렀다.
삶의 의미가 희미하게 퇴색되어 버린 날,
시원한 바람에 한껏 몸을 맡길 수 있다.

풀어놓으면 아무런 형태도 남아있지 않으리라.


목을 내어놓고는 긴장에 하루도 견디기 힘들었는데,
우습지, 삶이란 언제나 나와 어긋난 길을 걷고 있으니.

아스라히 보이는 절벽의 귀퉁이에 앉은 작은 비둘기는
푸른 초목이 우거진 평온에 자리한 듯 한 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내 등에 달라붙어 중심을 잃고 흔들리게 만드는데
저 비둘기는 불안하거나, 긴장하는 모습이 하나도 들어나지 않는다.

내게도 저런 날개가 있다면, 뛰어내림과 동시에 활짝 펼쳐져
나의 희망을 투명하게 열린 세상으로 흩뿌릴 수 있는 그러한 희망의 날개가 있다면.
무겁게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가볍게 벗어던지고 새로운 사람,
새로운 마음으로 충만할 수 있다면.


부질없는 희망은 내내 곁에서 떠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내게 그랬었지. 도퇴되어 버린다고, 너처럼 생각하고 있으면
무엇 하나 얻지 못하고, 넌 이름도 없이 도퇴되어 버릴 꺼라고.

그래, 그렇게 되어가겠지. 이름없는 잡초 하나가 운명을 다한 듯 사라져 가겠지.
미련이라는 건 사람들의 욕심의 산물일 뿐이야.


거두어야지, 숨은 내뱉는게 아니라 안으로, 속으로 가둬두어야 하는거야.
지리멸렬한 세상에 흔적을 남길 필요는 없잖아.


창공에 한 마리 비상하는 새처럼 날아오를 수 있잖아. 짧은 순간일테지만.

발끝이 아려온다. 치졸한 육신이 내내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지.
죽음이라는 걸 맞이할 꺼라면, 좀 더 당당하게 내 스스로 결정하는거야.
어렵지 않아, 내 자신이 마음껏 행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니까.


자, 넓게 손을 펼쳐보는거야.
볼을 스치고, 머리칼을 날리며, 뒷묵을 타고 차가운 바람을 맞이하는거야.
어머니의 품으로, 살짝 발을 내밀면 저 넓게 펼쳐진 요람으로 돌아가는거지.


눈을 띄고 싶었는데, 신나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스릴을
만끽하고 싶었는데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아. 그래, 괜찮아. 눈을 감는다 해도.

비틀거리며 중심을 잃고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추락를, 최고의 행복감을 느끼며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어. 시원한 바람이 아니야.


살을 애이는 듯한 칼바람이 옷깃을 타고 들어와 요동치는 심장까지 얼려버릴 것 같았어.

무섭다는 생각보다는 고통스럽다는 느낌이 피부를 파고들었지.
영화에서 비춰지는 그런 환희는 느낄 겨를도 없었지.

힘겹게 눈을 떴어. 얼굴로 부딪치는 바람으로 인해 무엇 하나 분간하기 어려웠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몇 번인가 바람에 쓸려 원치 않는 회전을 하고 있었지.
잠시 스친 땅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어.

몇 해 전 당했던 교통사고의 기억이 떠올라 몸이 굳어버렸지.
죽일 듯한 기세로 달려오던 그 밝은 불빛의 승용차가 다시금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았어.

잘 못 됐어. 내가 원하던 것은 이게 아니잖아. 평화로운 마지막이 아니야.
달아나려 했던 그 세상이 무섭게 나를 잡아당기고 있었지. 내 목숨을 내어놓으라며,
죄값을 받으라며. 아니야, 아니야. 이게 아니잖아.


빌딩의 건물이 치솟아오르 듯 내게 멀어지고 있었지.
선택은 달콤한 순간이었지만, 그 결과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내다르고 있었지.
손을 뻗어 다시금 저 위로 오를 수 있다면, 저 위에서 잠시나마 숨을 고르고
내 삶을 되돌릴 수 있다면, 비겁한 선택을, 삶의 도피를 되돌릴 수 있다면.


눈 앞에 차가운 바닥이 보였어. 일순간 시간이 정지해 버렸어.
하얗게 말라버린 심장과, 극에 달한 공포에 파랗게 질렸지.


   "띠띠띠띠.."


귀청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청각이 소멸되어 버리면 무감각하게 변질되어 버리는걸까?


   "손님, 시뮬레이션이 종료되었습니다. 즐거우셨나요?"
   "네.. 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가상체험인데, 어떠세요?"
   "아.. 가상체험."


온 몸이 땀범벅이다. 경직된 근육이 부들거린다. 그래, 가상체험이지. 죽고 싶었지.
직원이 건내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 선택이야. 삶이란 것은, 내 앞으로의 삶이라는 것은.
등이 간지럽다. 찬란한 백색의 날개가 조금씩 돋아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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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블루데이 2007/01/08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으로의 선택... 왠지 꽤나 와닿네요,

    • BlogIcon 벗님 2007/01/08 1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삶이라는 게, 현재 지금 이 순간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흘러간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을 살아가지 않으니..

  2. BlogIcon 인사이더 2007/01/08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은 잘 모르므로 패스

  3. BlogIcon Anzy 2007/01/29 17: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젠가는 정말 나올 것 같은 시스템이라 조금 무섭네요. 영화에서도 한 번 소재로 사용되는 걸 본 것 같은데..
    주인공의 선택이라는 말에 가슴이 마냥 차분해지는 느낌이에요. 물론 여러가지 의미로.

    글도 쓰시는 줄은 몰랐는데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4. BlogIcon 희야0914 2007/11/12 2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블로그를 막 시작한 초보입니다.

    저도 글쓰는것을 좋아해서

    습작을 블로그에 올려볼까 하는데

    종종 조언도 구하고 놀러오겠습니다~^^

  5. BlogIcon 부두인형 2009/07/27 1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교통사고의 기억들과 이상의 날개가 오버랩되는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 ^